육군 소장, 북한에 야전교범 통째 넘겨

[중앙일보 김민석.남궁욱] 북한에 포섭된 전직 안기부 공작원 박모(56·일명 '흑금성')씨에게 군사 기밀을 누출한 혐의로 국군기무사의 조사를 받던 김모 육군 소장이 9일 결국 구속됐다.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이 지난 8일 군 검찰이 청구한 김모 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심사한 지 이틀 만이다. 현역 군 장성이 북한 공작원에게 군사기밀을 알려줘 구속되기는 초유의 일이다. 특히 전면전에 대비한 '작전계획 5027'의 일부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. 현역 장성의 군사기밀 누설에 따라 군 기강과 보안 의식이 도마에 오르게 됐다.

김 소장은 중부전선 최전방 군단의 참모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던 2005~2007년 북한 공작원 박씨에게 군사기밀을 누설했다. 군단 참모장은 군단의 살림살이는 물론 작전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하는 자리다. 김 소장과 박씨는 모 사관학교 선후배 사이로 초급 장교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. 김 소장은 이미 전역한 박씨의 정체를 판단하지도 않고 군사 기밀을 누설한 것이다. 더구나 김 소장은 군사기밀을 누설하고도 기무사의 조사에선 혐의를 끝까지 부인했다는 것이다.

기무사 조사 결과 김 소장은 작전계획 5027의 전반적인 개념과 군단의 작전지역인 중부전선의 작전계획을 구두로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. 작계 5027은 북한의 전면 남침에 대비한 한미연합사의 핵심 방어 작전계획이다. 김 소장이 누설했을 당시 새로 작성된 '작계 5027-04'는 북한이 남침하면 한·미군이 즉각 공세적인 방어작전을 전개해 북한의 주요 위협을 먼저 제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. 특히 김 소장이 참모장으로 근무했던 중부전선은 북한군의 주공격로다. 따라서 북한군으로선 한·미연합군의 작전계획을 파악하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대응계획을 세울 수 있다.

김 소장은 또 우리 군의 중요한 전술과 무기운영 방법을 설명한 야전교범은 책자 그대로 박씨에게 넘겨줬다고 한다. 이 때문에 중부전선을 비롯한 육군의 북한군에 대한 대비책을 새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.

◆수사 확대=정부 관계자는 9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“추가로 연루된 이들이 여러 명 더 드러나 수사당국이 내사를 하고 있다”고 밝혔다. 이 관계자는 “'흑금성'과 김 소장 사이의 관계에 함께 연관된 이들이 최소 5명 이상 더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”면서 “수사당국에서 이들 모두에 대해서도 김 소장과 비슷한 혐의 적용이 가능한지 내사를 계속해오고 있으며, 그 결과 이 중 몇 명에 대해서는 조만간 입건도 가능할 것으로 안다”고 말했다. 이 관계자는 또 이들 추가 연루자들의 신분과 관련해서는 “현역 군인은 없는 것으로 알지만 직·간접적으로 군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”이라고 설명했다.

김민석 군사전문기자, 남궁욱 기자